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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신심과 에너지를 가진 올깎이 정범 스님   2011-08-12 (금)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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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신심과 에너지를 가진 올깎이 정범 스님

월간 불광 387호에서 옮겨 싣습니다.

속세의 인연을 뒤로하고 출가의 길을 나섰다. 부모님께 하직인사를 드리고 수덕사에 도착할 때까지 한 번도 웃지 않고, 사람들과 눈길도 마주치기를 피하며 심각한 마음을 추스르며 입산했다. 앞으로의 인생은 정말 진지하고 묵묵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기대는 그날 저녁부터 깨지기 시작했다. 저녁시간이 되자 학생들이 바글바글하게 공양간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초등학생에서 고등학생까지 거의 열 명 가까운 아이들이 절에서 살고 있었던 것이다. 열 명에 가까운 사내아이들이 절이라고 해서 조용히 지낼 리가 없었다. 어른스님들 눈치봐가며 마당에서 축구도 하고 장난도 치고 늘 시끌벅적한 활기가 넘쳤다. 오래 전부터 수덕사는 동자승이 많이 배출된 곳이다. 지금 산중의 어른스님들 대다수는 거의 십대 초반에 계를 받은 분들이다. 이런 동자승들을 절에서는 올깎이라고 한다.

정범 스님은 내가 수덕사에 입산했을 때 수덕사 동자들의 맏형이었다. 특히 총기가 있고 성적이 좋아 어른들이 홍성에 방을 얻어주어서 혼자 자취를 하며 공부하다가 주말에만 절에 들어오곤 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야기만 듣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얼굴을 익히게 되었다. 키도 크고 성격도 좋아 아이들이 잘 따를 뿐 아니라 어른들께도 예의가 발라 두루 신망을 얻고 있었다. 그래서 혹 아이들 사이에 문제가 생기면 정범 스님이 나가있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적지 않았다.

당시 대학을 마치고 입산한 나에 비해 고등학교를 다니던 정범 스님은 한참 어린 후배였다. 그런데 대학에 진학하고 바로 행자생활을 거쳐 계를 받으니 수계는 나보다 두 해 늦을 뿐이다. 나이로야 스물이 되었으니 올깎이가 아닐지 몰라도, 지금 시대의 올깎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정범 스님은 승복을 입고 대학원까지 마치고 군법사로 입대했다. 그리고는 군에 가면 장가갈지 모른다는 어른들의 걱정과 우려를 깨끗이 씻어버리고 당당하게 출가수행자로 다시 복귀했다.

뒤에 전해들은 이야기로 1994년 종단이 분규에 휩싸였을 때는 위법망구의 절박함으로 주변의 만류도 아랑곳 않고 분신을 시도하는 대범함과 결연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고 한다.

군법사 시절에도 오래 묵은 비리가 있는 것을 바로잡겠다고 나서서 오만 가지 어려움을 다 겪어가며 결국 문제를 해결했단다. 어려서부터 사람이 고지식하고 원칙을 잘 따지더니 그 천성은 바꾸지를 못하는 모양이다.

정범 스님은 정말 부지런하다. 너무 부지런해서 때론 다른 사람들이 피하고 싶을 정도다.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일이 해결될 때까지는 끝없이 사람을 만나고, 시간이 아무리 길어져도 결론이 날 때까지 토론을 멈추지 않는다. 그 끝없는 에너지가 도대체 어디서 솟아나는 건지 궁금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문득 미국에 가서 포교를 하고 오겠다고 가더니 거의 4년을 살다가 왔다. 나와 주변스님들의 경험으로 볼 때 한국스님들이 미국에 가서 6개월을 버티기가 힘들 정도로 고달프고 어려운 곳이다. 그런데 얼마나 애정을 키웠는지 귀국해서는 영어로 불교잡지를 펴내고 있기도 하다. 인터넷 포교며 폐사지 복원불사 등 눈에 걸리고 손에 잡히는 일이면 주저하거나 망설임이 없다. 가끔 힘들다고 엄살을 떨기도 하지만, 스스로 만든 일을 가지고 무슨 엄살이냐고 핀잔을 주면 그래도 함께 뜻을 모아달라고 열성이다.

입적하신 법장 스님께서 총무원장으로 계실 때, 정범 스님은 누구보다 많은 일들을 떠맡았었다. 그래서 주변에서는 정범 스님이 너무 과도하게 일을 맡는 게 아니냐는 걱정과 우려를 하기도 했었다. 사실 본인도 고민이 많았을 터였지만, 힘이 들어 주저앉을지라도 어른의 말씀을 거역 못하는 동진출가 올깎이의 충심이었던 것이다.

학교 졸업하자마자 월급봉투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하고 출가한 나로서는 때론 올깎이라고 우기고 싶지만 정범 스님을 보면 정신이 번쩍 든다. 그 지극한 수덕사 산중에 대한 애정과 어른스님들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 나로서는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것들이다.

그 동안에는 늘 어리게 생각해서 말도 편하게 하고 짐짓 어른행세를 한 것 같은데, 문득 따져보니 정범 스님도 나이 40에 법랍이 20년이 되었다. 그저 편하게만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세월이 훌쩍 지나버렸다.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는 선후배 관계도 좋지만 앞으로는 도반의 마음으로 위하고 챙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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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사야림 13-03-02 17:06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신심과 에너지를 가진
에너자이저,오뚝이..내 사랑 그 사람.
파이팅!!외쳐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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