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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내는 모습 본적 없이 무소유를 실천하는 도반 정화스님   2011-10-31 (월)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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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無所見 無分別(목무소견 무분별)
耳聽無音 絶是非(이청무음 절시비)

눈으로 봐도 본 바가 없어 분별심을 내지 않고
귀로 들어도 들은 바가 없어 시비심이 끊어졌다.


내가 아는 정화 스님은 그런 스님이다. 눈으로 봐도 본 바가 없어 분별심을 내지 않고 귀로 들어도 들은 바가 없어 시비심이 끊어진 스님. 송광사 행자실에서 만난 적이 있고 해인사 강원 도반으로 함께 수학했다. 정화당(正和堂)이 이 글을 읽고 혹 ‘미친 짓이여!’할 지 모르겠다.

그는 내가 아는 도반 가운데서도 매우 괴짜이고 무소유 실천자이다. 거지 수행자가 세계 각국에 많이 있지만 그는 진짜 거지 수행자이다. 버스를 탈 적에는 500원만 있어도 태연하다. 옛날에는 버스 여차장이 있어서 버스표를 끊어주곤 하였다.
“저어, 돈이 없어서.... 500원 밖에 없습니다. 500원어치만 타고 갈 수 없습니까?”

대구에서 해인사를 갈려는데 무일푼이라 500원 주머니 돈을 다 털어서 사정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 자체가 어린애답다. 여차장은 버스에서 내려 해인사로 향하는 그를 불러 세우고는,
“스님, 돈이 다 떨어졌는가 보지요, 여기 돈이 있으니 노자에 보태 쓰세요.”

그가 건넨 500원과 함께 몇 장 지폐가 그의 손안에 쥐어진다. 하도 딱해 보인 까닭에 여차장이 보시를 한 것이다.

출가 전, 교사였던 그는 학생을 구타한 사건으로 출가의 길을 걸었다고 한다. 뭐 대단하게 구타했다기 보다 학생이 하도 말을 듣지 않으니 손찌검질을 가볍게나마 한 것이 그의 양심에는 큰 못이 박히듯이 부담스러웠나 보다. 평생 눈 한번 크게 떠보지 않는 그요, 소리 한번 크게 지르지 않는 그인데 무슨 대단한 구타를 했겠는가. 선량한 그의 모습이다.
“내가 이래서는 안 되지. 수행이 먼저야. 내 수행이 되지 않는 상태에서 어찌 학생들 앞에 설 수가 있는가?”

그는 잠시 산중 생활을 하면서 학생들 앞에 설 만한 자격을 갖춘 스승이 되어 보겠다는 생각이 그만 종신 수행 길에 들어서고 말았다. 수행은 이렇듯이 끝이 없는 것인가.

정화 스님으로 계를 받기까지도 이 절 저 절을 다녔다. 송광사에서 해인사까지 털레털레 걸어서 갔다. 행자로서 아직 부족하다고 느꼈기에, 행자로 보통 여섯 달을 지내면 사미계를 받고 예비 스님의 길을 걷는 데도 그는 사양하였다. 그는 그런 스님의 과정을 겪으면서 자괴심(自愧心) 때문에 잠 못 이룬 나날이 많았다고 한다.

덩치가 큰 편인 그는 부엌일을 잘해 냈다. 무어나 잘 소화시키는 그를 두고,
“스님들이 다 됐기에 쓸 만한 남자가 없어요. 하하하”

하고 한 처녀가 우스개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공부라면.... 글쎄, 눈높이가 같아야 알아보겠지만..... 그의 수준이 퍽 범상치 않은 걸로 알고 있다. 화두선에서 보다 남방 비파사나 수행을 통해 유식(唯識)을 강의할 수준으로 끌어올린 그에게는 요즘도 여기 저기서 법문을 청하는 이들의 연락 때문에 소란스러울 정도다. 그래도 꼭 자기를 누르고 소리없이 사는 스님이 정화 스님이다.

화를 못내는 이는 바보이고 화를 안내는 이는 현자라고 한다. 스무 해 이상을 지켜 보아왔으나 정화 스님이 화 내는 모습을 아직 본 바가 없다. 실제 그는 바보가 아니니 아무래도 현자 쪽이 아닐는지. 강원 하반 시절에 상반의 ‘시집등쌀‘이 얼마나 센 지 정말 고추보다 매웠다. 그가 반장을 하면서 공사가 벌어졌을 때에 아주 점잖이 상반의 체면도 세워주고 하반의 입장도 살려주었다.
정화 스님은 공손한 말씨 하나가 일품인데 극한 상황에서도 요지부동으로 흔들림이 없다. 소 눈망울처럼 멀뚱멀뚱 뜬 그의 눈을 보노라면 저절로 존경이 생긴다.

<삶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생활 속의 유식 30송> 외에 재작년에 <함께 사는 아름다움>이란 제목으로 책이 나왔다. 스님이 쓴 게 아니고, 그의 금강경, 반야심경 강의를 청강한 이들이 녹음해 두었다가 테이프 내용을 채록해서 책으로 엮은 것이다.
그를 따르는 이들도 무척 존경하는 눈치이다. 스님의 이야기를 듣노라면 사람이 참 진실하구나, 하는 느낌이 저절로 오는 모양이다.
하나같이 정화 스님을 믿고 존경하는 마음이 지극하니 말이다.

누가 이 시대에 공부하는 스님이 적다고 했는가. 정화 스님 같은 이를 만난다면 생각이 크게 달라질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구도자의 진실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무소유 수행자의 본모습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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