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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경때 라면의 유혹   2011-09-02 (금)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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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라면이 처음 세상에 나온 것이 1968년도쯤이 아닌가 생각이 된다. 그때 나는 해인사 관음전에 살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해인사는 겨울에 눈이 많이 오는 곳이다. 흰 눈이 해인사를 이불처럼 덮고 있으면 추운 날씨에도 오히려 포근함이 느껴진다. 문제는 그 느낌을 타고 장난기가 발동한다는 데 있다.


학인시절, 밤이 되면 2인1조가 돼 야경을 매일 번갈아 돈다. 경내 순찰을 하는 것이다. 야경의 휴식공간을 흘거실(去室)이라 하는데, 학사대 전나무 밑에 두 평 남짓한 독채 기와집이 있다. 겨울에 장작불을 지펴 구들방은 그야말로 따끈따끈한 찜질방이다. 어느 겨울, 나는 친한 도반과 한 조가 돼 야경을 하게 됐다.


삼경(오후 9시) 종이 울리면 모든 조명등을 소등하게 된다. 이때부터 야경이 활동하는데 군불을 점검하는 등 화재예방이 최우선 과제며, 도(盜) 선생이 설치던 시절이라 방범의 임무도 주어진다. 절대 권한을 가진 야전 사령관인 셈이다. 작은 손전등을 들고 팔만대장경각을 시작으로 대적광전, 명부전, 퇴설당, 관음전, 경학원, 구광루, 천왕문, 일주문 등을 한 바퀴 돌면 1시간 가량 걸리는데 매 시간 돌아야 한다. 요소요소마다 깡통을 달아놓고 바둑알만한 크기의 야경패를 집어넣으면 ‘땡그랑’ 소리가 울린다. 그 소리가 나야만 주지 스님을 비롯한 사중 소임자 스님, 큰스님들이 편히 주무신다.


장난기가 동했다. 궁현당 어디쯤에 원주실이 있고, 원주실 곁 창고에 어제 대중공양 들어온 라면이 쌓여 있는 것이 떠올랐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랴.’ 살금살금 창고 문을 열고 한 박스를 들고 나와 야경길을 되돌아가 흘거실로 갔다. 이글거리는 숯불 위에 양철로 된 양동이를 올려놓고 라면 한 박스를 다 넣었다. 소위 ‘바케스 라면’이다. 아래쪽 뜨거워진 면부터 먹으면서, 찬물을 부어 끓이고, 또 끓이기를 몇 번씩하며 둘이서 참 맛있게 먹고 있었다. 라면삼매에 빠진지 얼마나 지났을까. 저쪽 대적광전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주지 지월스님이었다.


도반 정각스님은 열린 문을 등지고 양동이에 머리를 들이밀다시피, 라면 먹기에 몰두해 있었다. 나는 빠른 동작으로 조용히 밖으로 나와 다음 광경을 엿봤다. 지월스님이 손으로 라면을 먹고 있는 정각스님의 등을 두드렸다. 정각스님은 내가 그러는 줄 알고 “건들지 마라, 임마. 개도 먹을 때는 건들지 않는데이” 하면서 계속 먹기만 한다. 주지 스님은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


한참 먼 산을 바라보다가 다시 등을 두들겼다. “건들지 마라카이” 하면서 정각스님이 벌떡 일어났다. 순간, 양동이를 냅다 집어던지고 어둠속으로 36계 줄행랑을 쳤다. 아마 새벽 3시 쯤 됐을 것이다.


야경을 방만히 한 죄, 라면을 훔친 죄, 주지 스님께 욕을 한 죄를 합하면 당연지사 ‘퇴방’이다. 얼마 전에 야경을 돌다가 잠이 들어 벌칙으로 공양주를 열흘간 한 사례도 있었다. 이튿날 아침 공양이 끝나고 대중공사가 붙여졌다. 주지 스님께서 “어제 밤 야경한 학인 앞으로 나오세요” 한다. 우리는 대중 앞에 나가 꿇어앉았다.


“대중 앞에 참회하세요.” 삼배의 큰 절을 올렸다. “두 학인은 하루에 1000배씩 하면서 열흘간 야경을 하세요.” 다시 대중을 향해 삼배를 올렸다.


42년 전 야경 때 훔쳐 먹던 라면의 맛은 지금도 군침을 돌게 하는데, 주지 스님도, 도반도 먼 길을 떠나고 없다. 학사대 천년 전나무 밑에 찬바람만 맴돈다.



재원스님 [불교신문 2695호/ 2월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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