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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오버라도 좋다!   2011-11-11 (금)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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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하늘은 푸르름으로 가득하고 계룡산의 나무들은 완연한 가을 옷으로 갈아입는 중이다. 오늘도 귀뚜라미는 얼마 남지 않은 계절이 아쉬운 듯 여느 때보다 더 목청껏 합창하고, 나는 벌써 동학사에서 세번째 가을을 맞았다. 이건 나에겐 대단한 축복이다!

왜?
강원에 오기 전 어느 강원을 갈 것인가 생각하던 중 지인스님들로부터 동학사가 문과대학이란 얘기에 귀가 솔깃해졌고, ‘동학사를 졸업한 스님들은 대개 사고가 열려있어서 생각의 폭도 넓고 승려로서의 위의도 갖추며, 졸업하고 막상 어떤 일이 있을 때는 강원시절의 도반
이 제일이더라.’라는 은사스님의 그 한 마디에

“그래, 결정했어! 동학사로 가는 거야.”
망설임 없이 청운의 꿈을 안고 동학의 품으로 들어왔건만….
헉, 이게 웬 날벼락인가!
입학한지 3일 만에 이불을 들다가 허리가 그만, 나가 버리고 말았으니 그때부터 나의 눈물겨운 투병은 시작되었다. 1학년 때는 첫 철이라 익혀야 할 습의도 많아 벅찬데 허리까지 다쳐 지대방에서 그야말로 ‘지대’고 있어야만 했다. 또 종두며 울력이며 정신없이 바쁜 날들 속에서 풀이 죽은 채‘고개 숙인 지현’이되어야 했다. 중물을 잘 들여야 할 텐데 주눅 아닌 주눅에 마음은 굳어져가고 몸 또한 굳어갔다.

이런 날들의 연속으로 머릿속은 하얗게 되어버려 어리둥절한 모습을 한 채 상반스님에게 무엇인가를 고하려 하면 말이 잘 안 떠오르고 더듬거리기까지 하였다. 내 자신이 한심하고 매사에 자신감이 없어져서 무슨 일이든 주어지면 못한다는 말부터 튀어나와 주위의 스님들을 너무도 힘들게 하고 있었다.

산 넘어 산이라더니, 1학년 겨울철 시작할 무렵에 한쪽 발목을 삐었는데, 3일 후에 다른 쪽까지 다쳐서 걷기조차 힘들어져 결국엔 병원 신세를 져야 했고, 그 후 후유증으로 한 달에 한 번 꼴로 발을 다치다시피 하였다. 이렇게 되니 반에서도‘어휴, 또 지현스님이야?’골치 덩어리에 관심거리 1호 스님으로 부각되었다. 게다가 나는 목소리마저 커서 자주 지적의 대상이 되어 반 스님들의‘못 말리는 존재’로 낙인 찍혀 목소리를 작게 해 보려고 무척 애를 썼지만 보이스 볼륨이 고장이 났는지 뜻대로 되지 않았다. 고난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으나 이런저런 비난에도 난 그럭저럭 꿋꿋이 견디어 나갔다. 작년 가을엔 강당에서기도하는 소임인 부전을 살았는데 몸은 여전히 따라주지 않았지만 신심을 내어 열심히 살았기에 소임 사는보람도 맛볼 수 있었다.

출가 전이나 지금이나 나의 발원은 한결같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기쁨을 주는 사람이 되는 것인데, 이곳에 와서 많은 일들을 겪다보니 정말 쉽지 않은 발원을 했음을 알았다. 도반스님이 힘들어 할 때 내가 좀 거들려고 하면 오버하지 말고 네 앞가림이나 잘 하라는 둥 내가 잘하려 해도 그건 내 생각일 뿐 상대방이 주제 넘는 행동으로 받아들여 거북해하면 오히려‘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도 이것만은 확신할 수 있다. 진심으로 마음을 열고서 누구에게나 차별 없는 마음으로 대하면 언젠가는 이런 나의 마음이 꼭 전해져 내가 생각한 대로 될 수 있다고…아니 되고 있다고.

드디어 통했던 것일까?
3학년이 되면서 우리 반 스님들에게 조금씩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나도 이제 더 이상 주변만 맴도는 지현이가 아니라 ‘절차탁마’와 함께 하는 지현이로 거듭 나고 있다.
그렇다! 그들은 항상 날 있는 그대로 대해주고 있었는데, 나 스스로가 빗장을 닫아걸고서 아집我執에 갇혀 살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물은 흘러야 썩지 않고 계절의 변화가 없으면 만물을 길러낼 수 없듯이 아파도 힘겨워도 흘러야 한다. 날 위해 절차탁마 해주는 도반이 있고 그 도반들을 볼 때마다 내 입가에 미소가 번지니 이 얼마나 좋은가! 지금 이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면 어느 때 느끼리.

그래 2% 오버라도 좋다. 동학사에서 보냈던 날들은 내 인생에 너무나 값진 보석 같은 시간으로 남을 테니까!

동학사 승가대학 3학년 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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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멘토, 울형님! 
깨달음을 향한 또 다른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