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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교구본사 봉선사 인수·인행 ‘형제 사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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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5-06-02 11:04 조회1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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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행 사미 “염불부터 잘하고 싶어요”
인수 사미 “스님들의 삶에 물들고파”

봉선사의 두 형제사미, 인행스님(왼쪽)과 인수스님. 인수 사미가 형님이고, 인행 사미가 아우다. 광동중 광동고에 나란히 다니는 두 사미는 날마다 새벽 4시반에 일어나 도량석에 새벽예불을 올리면서 염불기도에 여념이 없다.
봉선사의 두 형제사미, 인행스님(왼쪽)과 인수스님. 인수 사미가 형님이고, 인행 사미가 아우다. 광동중 광동고에 나란히 다니는 두 사미는 날마다 새벽 4시반에 일어나 도량석에 새벽예불을 올리면서 염불기도에 여념이 없다.

승복 입고 학교 다니는 ‘형제 사미’

2025년 새해 첫날 아침 제25교구본사 봉선사 청풍루. 올해 고3이 된 형은 중3 어린 동생을 이끌고 삭발의식에 임했다. 친형제가 출가발심하여 삭발한다는 입소문에 청풍루를 가득 메운 사람들은 숨죽이며 이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먼발치서 환희의 눈물을 머금은 두 아들의 어머니는 스님들 권유로 맨 앞자리에 앉았다. 몸은 다 컸지만 아직 어린 티를 다 벗지 못한 두 아들이 삭발한 민머리를 매만지면서 쑥스러운 표정으로 입술을 악물고 올리는 큰 절을, 어머니는 감사히 받았다. 

머리를 깎고 행자생활을 무사히 마쳤다. 2월 말 조계종 제68기 사미계 수계교육을 회향하고 마침내 예비 스님, 사미가 됐다. 은사 호산스님은 형에게 인수(仁修), 아우에겐 인행(仁行)이라는 법명을 내렸다.

겨우 세 살터울에 아직 고등학생이지만 형님 사미는 의젓한 품새가 남다르다. “출가가 낯설거나 어려운 일이 아니었어요. 부모님이 독실한 불자인 것은 물론이고 존경하는 외삼촌이 스님이시고 외가쪽에 또다른 친지분도 출가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분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받으면서 출가발심이 생겼고, 주변 어르신들이 권유하시고 밀어주신 덕도 있습니다.” 행여 어른들 등쌀에 떠밀려 출가한 건 아닌지 의심했던 기자가 송구할 지경. 동생 사미야말로 ‘어쩌다 출가’다. 형님이 출가상담을 받을 때 엄마 옆에 앉아 있다가 마음이 동했다. 그럼에도 봉선사 스님들은 형보다 아우가 ‘중생활’ 더 야무지게 잘하겠다 농을 건넨다.

두 형제 사미의 하루는 새벽 4시반에 눈을 뜨며 시작된다. 일어나 세수하고 도량석 치고 새벽예불 올린 뒤에야 아침공양을 먹을 수 있다. 그 나이 때 남학생들 하나같이 아침마다 일어나니 마니, 학교엘 가니 마니 하며 엄마와 전쟁을 치른다는데, 도량석에 예불이라니. 인행 사미가 말한다. “괜찮습니다. 처음엔 조금 힘들었는데 형님과 같이 이야기하면서 의지가 많이 됐어요.” 동생을 바라보는 형님의 눈빛에 훈기가 돈다. “저도 마찬가지지요. 세상 제일 편하게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말동무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2025년 1월1일 봉선사 청풍루에서 삭발의식을 마치고, 은사 호산스님(제25교구본사 주지), 봉선사의 어른 능엄승가대학원 학장 정원스님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2025년 1월1일 봉선사 청풍루에서 삭발의식을 마치고, 은사 호산스님(제25교구본사 주지), 봉선사의 어른 능엄승가대학원 학장 정원스님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삭발의식에 봉선사 스님들과 신도들이 자리를 함께 하며 응원하고 격려하는 시간이 됐다.
삭발의식에 봉선사 스님들과 신도들이 자리를 함께 하며 응원하고 격려하는 시간이 됐다.

두 사미는 광동학원 산하 광동중과 광동고에 재학중이다. 특이점은 교복이 아닌 승복을 입고 학교생활을 한다는 사실. “괜찮아요. 불교 종립학교인데요. 오히려 좋아요.” 두 사미가 한목소리로 말한다. 하기야 학교를 설립한 봉선사의 교구장 스님 상좌인데다, 승복 입은 사미에게 선생님들이 편하게 야단치지도 못하겠다, 라는 말을 넌지시 건넸더니 두 사미는 손사래를 치며 웃는다.

“아직 원대한 계획은 없습니다. 지금은 염불을 잘하고 싶어요, 스님들처럼 예불도 능숙하게 잘하고, 스님들 삶에 물들고 싶습니다.” 형님에 응수하듯 아우 사미도 “저도 예불 잘하는 것이 최우선인 것 같다”고 말한다. 너무 힘들 때는 포기하고 싶지 않을까? 라는 질문에는 단호한 응답이 돌아왔다. “그럴 일은 일체 없습니다!” 햄버거 치킨이 간절할 때도 있을텐데, 라는 물음에는 덜 단호하게 답했다. “그건…비밀입니다. 하하.”

두 아들 기꺼이 출가의 길 이끈 어머니

“애타는 마음, 서운한 마음보다 좋은 도량에서 훌륭하신 스승님들이 보살펴주시니 너무나 든든하고 감사하는 마음 뿐이죠.” 금쪽같은 두 아들을 서슴없이 출가수행자의 길로 안내한 어머니 박현진씨는 “아이들이 험난한 이 세상에서 오직 바르게 크기만을 서원했는데, 출가의 길에 들었으니 이제 정말 더 바랄나위가 없다”고 했다. 어머니는 두 아들과 어릴 때부터 함께 기도정진하는 생활을 했다. 엄마의 일상적인 수행이 자녀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이토록 위대하다.

“염불기도를 함께 하기도 하고, 큰 아이는 학교 가서도 제 권유대로 광명진언을 3000번씩 외고 오는 선하고 귀한 아들었습니다.” 특히 ‘기독교 사립학교’에 다니게 되어 종교적 어려움이 있었다는 전언이다. 승복 입고 종립학교를 편안하게 다니는 즐거움이 이제야 이해가 됐다. “맞아요. 승복 입고 학교 다니는 것을 엄청 자랑스럽게 여겨요. 두 아들이 생각보다 정말 행복해하고, 행자생활 사미생활을 잘 버티고 적응해나가는 것 같아 감사할 따름입니다.”

어머니 박현진씨는 봉선사 불교대학을 다니며 불자로서 공부하고 여전히 정진한다. 이따금씩 먼발치서 두 아들을 보면, “잘하고 있구나”. “얼굴이 전보다 좋아졌네”라는 혼잣말을 하면서 내심 뿌듯함을 느낀다. “사미계를 받는 날 느꼈습니다. 아, 이제 내 품에서 떠났구나. 정말 간절했구나. 이제 걱정되는 내 아이가 아니구나, 라고 절감했지요. 그래도 그 길을 가다보면 어려움이 많겠지요. 하지만 잘 이겨낼겁니다. 제 기도는 오직 그뿐입니다.”

[불교신문 3873호/2025년6월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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