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조계종 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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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이야기

출가란?

대한불교조계종 출가

내 생에 가장 빛나는 선택 출가

어서 오너라, 그대여! 아주 잘 왔다.

인생의 큰 전환을 위해 출가한 젊은이들에게 석가모니 부처님이 건넨 환대의 인사입니다.

출가는, 낡은 생각과 묵은 습관에 길들여진 집 밖으로 나와, 청정·자유·창조의 새 삶을 가꾸는 위대한 포기이고 크나큰 삶의 혁명입니다.
출가는, 가슴 벅찬 환희의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 걸어가는 '옛 길이요, 오늘의 길이요, 미래의 길' 입니다.
출가의 길은, 다른 길이면서 나만의 길입니다.
출가의 길 위에서 선 이들은 '온전한 삶'으로 말합니다.
출가의 길 위에서 선 이들은 진실한 마음씀으로 말하고, 지극히 낮은 몸으로 당당하게 말하고, 비움과 나눔으로 말하고, 세상의 아픔에 공감하는 가슴으로 말합니다.
그리하여 그의 삶 하나하나가 그대로 자유와 기쁨이 되는 삶을 누립니다.
내려놓고 바라보면 길이 보입니다.
그 길은 자유의 길이요 평화의 길입니다.
삶의 큰 전환은 결단입니다.

자유와 평온, 함께 하는 기쁨의 길

나는 진정 의미있고 주체적인 삶을 지향하고 있는가? 내 의지와 느낌으로 하루하루를 온전한 기쁨으로 살고 있는가? 세속적 성공을 위해 속도와 경쟁의 레일 위에서 무한질주하고 있지는 않는가?
그 옛날, 보리수 아래서 눈을 뜨신 분, 석가모니 부처님! 그 분은 모든 생명의 삶터에서 고뇌하고 절망했다. 그러나 그 분은 외면하거나 도피하지 않았다. 정직하게 질문했고 치열하게 길을 찾았다.
마침내 길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자유와 평온, 함께 하는 기쁨의 길을 발견했다. 그 길은 늘 우리 곁에 열려있는 길이다. 지금 내가 갈 수 있는 길이다.
인류의 스승들과 참 삶을 살고자 하는 이들이 걸었던 길이다. 그들의 삶이 옳은 길임을 역사는 증명하고 있다.
낡은 생각과 묵은 습관의 무거운 짐을 훌훌 떨치고 자유와 환희의 힘찬 비상을 꿈꾸지 않겠는가?
묻지 않는 자에게 답은 주어지지 않는다.
삶의 큰 전환은 지금 여기 나의 결단에 있다.

부처님의 출가

태자비 야소다라

태자 나이 열아홉, 건강한 사꺄족 남자라면 누구나 결혼을 생각하는 나이였다. 숫도다나왕은 샤까족 장로회의를 소집하고 태자의 결혼문제를 논의하였다. 고귀한 신분에 뛰어난 재능과 품성을 가진 싯닷타에게 샤까족 대신들이 앞 다투어 자신의 딸을 추천하자 숫도다나왕은 결정권을 태자에게 맡겼다. 태자는 자신의 의사를 밝혔다.
"젊고 건강하며 아름다우면서도 교만하지 않고, 삿된 생각을 품지 않고 시부모를 자기 부모처럼 섬기며, 주위사람들을 자신의 몸처럼 돌보고 부지런한 여인이라면 승낙하겠습니다."
숫도다나왕은 보석이 담긴 오백 개의 꽃바구니를 준비하고 태자비 간택을 위해 연회를 연다는 소식을 여러 나라에 전했다. 소식은 멀리 꼴리야까지 전해졌다. 꼴리야의 왕 숩빠붓다는 외동딸 야소다라에게 넌지시 권하였다.
"너도 태자에게 찾아가 보석을 받아오너라." 아버지를 닮아 자존심이 강했던 야소다라는 쉽게 승낙하지 않았다. "아버지 보석이라면 우리집에도 많지 않습니다?" "태자가 너를 얼마나 소중히 여길지 알아보려는 것이다."
칠 일 후, 성년을 맞이한 아리따운 여인들이 궁을 가득 메웠다. 숫도다나왕은 태자가 어떤 처녀에게 관심을 보이는지 살피고 보고하게 하였다. 연회가 시작되었다. 태자는 예의를 갖춰 인사를 나누고 처녀들에게 차례차례 보석바구니를 나눠주었다. 연회장에는 젊은 처녀들의 건강한 웃음이 넘쳤다. 준비된 오백 개의 바구니를 모두 나눠준 다음이었다. 힘찬 말 울음소리가 들리고, 뒤늦게 도착한 한 여인이 연회장으로 성큼성큼 걸어들어왔다. 키가 크지도 작지도 않고, 몸매가 뚱뚱하지도 야위지도 않고, 피부가 희지도 검지도 않은 그 여인은 단정하고 엄숙했다.
그녀는 큰 걸음으로 태자에게 다가와 말했다. "저에게도 바구니를 주십시오." 장신구와 화장으로 치장한 여인들 사이에서 그녀는 별다른 꾸밈없이도 황금처럼 빛났다. "바구니가 남아 있지 않습니다." "저에게 창피를 주려고 하십니까?" 여인의 당돌한 행동에 시종들이 몰려들고 주위는 긴장감에 휩싸였다. 연회장은 한순간 얼음처럼 싸늘해졌다. 태자는 손짓으로 시종들을 물리고 푸근한 미소를 보였다.
"이 보석이면 마음에 드시겠습니까?" 태자는 손가락에 꼈던 반지를 빼어 야소다라의 손에 끼워주었다. 기회를 잃은 여인들의 탄식이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그러나 그녀는 쉽게 웃음을 보이지 않았다. 태자는 옷을 장식했던 보석을 하나하나 풀어 건네주었고, 그래도 만족하지 못하는 그녀의 표정에 웃옷마저 벗어주려던 참이었다.
"그만하십시오. 저는 꼴리야의 공주 야소다라입니다. 제가 이 몸으로 태자님을 장식해 드리겠습니다." 태자의 뜻을 확인한 숫도다나왕은 숩빠붓다왕에게 사신을 파견하여 청손의 뜻을 밝혔다. 숩빠붓다왕은 어깨를 활처럼 펴며 말했다.
"우리 집안은 예로부터 학문과 무예를 겸비한 사람을 사위로 삼아왔습니다. 권력과 재물만 보고 딸을 보낼 순 없습니다. 궁궐에서만 살아온 태자가 어떤 분인지 저희로서는 알 길이 없습니다. 건강한 샤까족 청년들과 겨루어 정정당당히 승리하신다면 정성을 다해 가마를 꾸미겠습니다."
칠 일 뒤 야소다라와의 결혼을 전제로 한 경합이 벌어졌다. 교양과 미모를 겸비한 야소다라에게 끌리는 사람은 태자만이 아니었다. 오백 명의 건장한 샤까족 청년들이 시험장으로 몰려들었다. 샤까와 꼴리야의 국왕을 비롯한 모든 대신과 수많은 백성들이 운집한 가운데 위슈와미뜨라가 심판관이 되고, 아르주나가 수학시험관이 되었다.
사촌인 마하나마 역시 뛰어난 재능을 보였지만 수학과 언변에 능한 태자와는 감히 논변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평소 사색을 즐기고, 사냥과 싸움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던 태자를 이길 기회는 무예를 겨루는 자리뿐이었다. 무예 과목으로는 먼저 샤까족이 중시하는 궁술로 정해졌다.
2구로사마다 과녁으로 쇠북을 하나씩 세워놓고 쏘아 맞히는 시합이었다. 대부분의 청년들은 2구로사나 4구로사의 콰녁에 그치고 말았다. 뛰어난 솜씨를 자랑하던 이들도 6구로사에 세워진 과녁을 명중시키는 이는 한둘에 지나지 않았다.
샤까족 젊은이들 중 가장 무예가 뛰어난 마하나마가 나섰다. 팽팽히 당겨진 그의 시위에서 날아간 화살은 8구로사에 세워진 쇠북을 경쾌하게 울렸다. 모여든 구경꾼들의 환호에 손을 흔들어 답하고 마하나마는 활을 태자에게 넘겼다.
태자는 자세를 가다듬고 사위의 강도를 점검하려고 손가락을 걸어 가볍게 튕겼다. 주위의 웅성거림이 한순간에 잦아들었다. 숫양의 뿔에 쇠심줄을 건 독특한 활이 썩은 나무처럼 부러져버린 것이었다. 시험관이 새 활을 가져다주었지만 그것 역시 제대로 당겨보기도 전에 부러지고 말았다. 당황한 시험관에게 태자가 말하였다.
"기력을 다해 당겨볼 만한 좋은 활은 없습니까?" 단상의 숫도다나왕이 흐뭇한 웃음을 지어 명하였다.
"사당에 보관된 활을 가져오라." 두손으로 들기에도 무거운 활을 시종들이 가져왔다. 숫도다나왕은 그자리에 일어나 태자에게 활을 건네며 말했다.
"이 활은 너의 할아버지 시하하누께서 쓰시던 활이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는 활줄을 걸 사람조차 없었다. 네가 한번 사용해 보거라." 활을 받아든 태자는 단숨에 활줄을 걸었다. 그리고 가볍게 몇번 튕겨보고는 힘차게 시위를 당겼다. 굉음을 일으키며 번개처럼 날아간 화살은 10구로사 거리의 쇠북을 관통하였다. 놀란 샤까족들이 달려가보니 화살이 떨어진 곳이 깊게 패여있었고, 그 아래에서는 맑은 샘이 솟아올랐다. 궁술이 에어 검술을 겨루고, 말과 코끼리를 다루는 솜씨 등 갖가지로 힘과 기예를 겨뤄보았지만 어느 누구도 태자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백성들의 환호성 속에 심판관 위슈와미뜨라가 경합의 결과를 발표하였다.
"태자께서 승리하셨습니다. 승리자는 태자입니다."
두종족의 축복 속에 결혼이 성사되었다. 태자는 승자로서 사랑하는 여인 야소다라를 당당히 아내로 맞이하였다. 태자비를 맞이하던 날, 가마를 타고 궁전으로 들어서던 야소다라는 드리워진 비단 휘장을 걷어버렸다. 그런 뒤 가마를 세우고는 내려서 걸어들어왔다. 깜짝 놀란 궁중의 여인들이 달려 나갔다. "태자비님, 아직 얼굴을 보이시면 안 됩니다." 궁녀들의 호들갑에도 야소다라는 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흠 없는 얼굴을 감출 이유가 무엇이냐."

부처님의 생애 - 조계종출판사 2010


출가를 꿈꾸는 그대에게

-도법스님

자유를 향한 자유로운 날개짓, 출가


친구여,
요즘 사는 것이 어떠한가? 그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고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을 활기차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네. 나는 누구인가? 내 인생은 어떤 존재인가? 인간은 왜 태어났으며 왜 사는가 하는 존재의 이유와 가치에 대한 시원한 해답을 갖고 당당하게 살고 있는가? 본인이 반드시 실현하고 누리고 싶은 내 생명이 안전하고 평화롭고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가? 오늘의 젊은이들이 길을 찾지 못해 풀이 죽어 있다는 신문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흰 눈 수북이 쌓인 장엄한 지리산 길을 걸으며 그대의 안부를 이렇게 묻고 있네.
친구여,
만일 그대가 길을 찾지 못해 고뇌하고 있다면 그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대부분은 보수 기득권자들 때문이다. 경제 불황 때문이다. 경쟁력이 없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 때문이다. 등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는데, 물론 틀리지 않는다고 보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삶을 살아가야 할 주체인 당사자가 기존의 반생명 비인간적인 아귀다툼의 틈바구니에 끼어들어 치사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없다 또는 그런 삶은 나에게 전혀 맞지 않는다. 어쩌면 내가 살고 싶고 나에게 맞는 길이 따로 있는데 그 길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라고.
친구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분명 후자의 경우가 맞다고 보네. 왜 그런가? 이유는 간단하네. 세상 사는 이치가 그렇고, 내가 살아온 경험이 그렇기 때문이네. 주의 깊게 관찰해보면 나만 그런 것이 아니고 대부분의 삶이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네. 역시 이유는 분명하네. 여전히 지구는 넓고 길도 천갈래만갈래이네. 어쩌면 사람 수만큼 길은 있네. 본인이 마음만 먹으면 길은 곳곳에 열려있네. 다만 사람들이 엄연한 이 사실을 잘 모르거나 믿지 않고 있네. 정말 주체적으로 자기 개성을 살리고 본인이 꼭 살고 싶은 삶을 살겠다고 작정한다면 그 길은 어디엔가 반드시 열려있네. 따라서 길이 없기 때문에 길을 못찾는다고 하는 것은 세상을 모르고 인생을 모른다는 이야기이네. 또는 본인 스스로가 마음을 활짝 열고 주체적으로 개성 있는 자기 길을 찾지 않음을 뜻하는 것이라고 보네.
친구여,
내 이야기를 해보겠네. 나는 지독하게 가난한 시골집에서 태어났네. 아버지는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셨네. 학교도 초등학교를 근근이 졸업했네. 집에서 농사일이나 도우며 할 일없이 지내고 있었네. 어느 날 어머니께서 누구에게 들었는지 "막내는 중 될 팔자란다. 그러니 중이나 되거라." 하셨네. 그리고 이광수의 원효대사라는 소설을 읽었네. 원효는 멋있었네. 나도 원효처럼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네. 그렇게 해서 별 생각 없이 열여덟 살 때 금산사에 들어가 머리를 깎았네. 그리고 오늘까지 그 길을 걸어왔네. 지금 돌이켜보면 어처구니 없기도 하고 멍청한 짓 같기도 하지만 참 다행이다 싶네. 세상에 많은 길이 있지만 이 길만큼 좋은 길이 또 있을까 싶네. 이유를 설명해보겠네. 의식주 문제를 걱정할 일이 없네. 부양가족 문제도 거의 문제가 되지 않네. 전국의 사찰들이 모두 내 집이네. 지금은 전 세계를 무대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네. 21세기 인류 사회가 주목할 정도로 불교의 사상과 정신이 탁월하네. 인간적으로 가장 아름답고 의미 있는 이상과 무대를 삼을 수도 있을 거이네. 21세기 인류 사회가 주목할 정도로 불교의 사상과 정신이 탁우러하네. 인간적으로 가장 아름답고 의미 있는 이상과 가치를 추구하네. 나쁜 마음먹고 나쁜 짓만 하지 않는다면 최고의 이상과 가치인 인류의 공동선을 마음껏 추구할 수 있네. 얼마나 대단한 조건이며 얼마나 신나는 길인가. 스스로 게으르고 나약하지만 않는다면 한 인간에게 주어진 최고의 조건이요, 한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최고의 길이네.
친구여,
나는 그 안에서 내 마음껏 살아왔네. 처음에는 의무교육기관인 강원에서 경전 공부를 했네. 참선해서 깨닫는 것이 최고라고 배웠네. 바로 선원에 들어가 참선했네. 10여 년 열정을 쏟았네. 생각처럼 잘 안되었네. 선원 생활 풍토에 대한 회의가 들었네. 그 때 선원생활을 정리하고 나왔네. 인류가 낳은 최고의 사상세계라고 평가하는 화엄경을 공부하는 화엄학림을 열었네. 뭔가 부족함을 느끼고 중간에 중단했네. 친구들과 선우도량을 만들어 21세기 승가상 확립과 승풍진작 운동을 했네. 실상사에 본부를 둔 이후 지리산 살리기 운동, 21세기 사회적 대안을 찾기 위해 생태 자립 마을 공동체 운동, 대안교육 운동, 생명평화 운동을 했네. 그리고 지금은 지리산이 생명을 살리고 평화를 실현하는 마을과 사회가 되도록 하는 지리산 성지화 운동을 하고 있네. 내가 장황한 설명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본의는 단순 명료하네. 내 역량과 노력이 부족해서 대단한 인생을 살지는 못했네. 하지만 그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았네. 내 양심과 신념에 따라 내가 살고싶은 삶을 내 마음껏 살아왔네. 지금 생각해보면 놀라운 일이네. 인생살이에 기본적으로 있어야 할 자질구레한 일들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껏 자유롭게 자기 길을 갈 수 있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매력적인가. 이보다 더 좋은 저건, 이보다 더 훌륭한 길은 매우 드물다고 보네.
친구여,
생각해 보게나. 이만하면 한번 마음 내볼 만하지 않은가? 한바탕 멋지게 춤을 추어볼만한 멋진 무대가 출가 수행자들의 길이라고 여겨지지 않는가? 누군가가 나에게 인생을 어떻게 살면 좋겠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기꺼이 아무 망설임도 없이 이 길을 권할 것이네. 단 한 가지 조건이 있네. 편안하게, 쉽게, 적당하게 살겠다고 하는 옹졸한 생각을 하고 있다면 절대 마음 내서는 안되네. 적어도 인생을 참되게, 멋지게, 의미 있게, 그리고 인류의 공동선을 위해 땀흘리겠다는 마음이라면 주저하지 말고 나서게나. 머뭇거리지 말고 오게나. 우리시대, 우리 사회가 그런 멋진 수행자를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네. 많은 사람들이 그런 참된 수행자를 간절히 그리워하고 있네. 길이 활짝 열려있네. 그 곳에 그대의 희망, 우리 사회의 희망이 있다고 보네. 기다리겠네. 언젠가 어디에선가 이 길에서 좋은 친구로 만날 수 있기를 기다리겠네. 잘 있게나.

법정스님의 편지

네 종류의 수행자

대장장이네 아들 푼다가 말했다. "위대한 지혜로운 성인, 눈을 뜬 어른 진리의 주인, 애착을 떠난 분, 인류의 최상인, 뛰어난 마부께 저는 묻겠습니다. 세상에는 어떤 수행자들이 있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스승(부처님)은 대답하셨다. "춘다여 네 종류의 수행자가 있고 다섯 번째는 없느니라. 지금 그 물음에 대답하겠다. '도의 승리자', '도를 말하는 사람', '도에 의해 사는 사람' 그리고 '도를 더럽히는 자'이니라."
대장장이 춘다는 말했다. "눈을 뜬 사람들은 누구를 가리켜 '토의 승리자'라고 부르십니까. '도를 말하는 사람'은 어째서 다른 사람과 견줄 수 없으며 '도에 의해 산다'는 것은 무슨 뜻인지 설명해 주십시오. 그리고 '도를 더럽히는 자'에 대해서도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의혹을 넘어서고 고뇌를 떠나 열반을 즐기며 탐욕을 버리고 신들을 포함한 세계를 이끄는 사람. 이런 사람을 '도의 승리자'라고 눈을 뜬 사람들은 말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으뜸가는 것을 가장 으뜸가는 것으로 알고 법을 설하고 판별하는 사람. 의혹을 버리고 흔들리지 않는 성인을 수행자들 중에서 둘째로 '도를 말하는 사람'이라 부른다.
잘 설명한 진리의 말씀인 도에 의지해 살면서 스스로 억제하고 깊이 생각해서 잘못된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을 수행자들 중에서 셋째로 '도에 의해 사는 사람'이라 부른다.
명세한 계율을 잘 지키는 체하지만 고집 세고 가문을 더럽히며 오만하고 남을 속이며 자제력이 없고 말 많고 그러면서도 잘난 체 뻐기는 사람을 가리켜 '도를 더럽히는 자'라고 한다.
학식이 있고 총명한 재가신도는 '그들 네 종류의 수행자는 다 이와 같다'고 알아 그들을 통찰하여 그와 같이 보더라도 그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는다. 그는 더럽혀진 것과 더럽혀지지 않는 것, 청청한 이와 청청하지 않은 자를 혼돈할 염려가 없기 때문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출가서울 종로구 우정국로 55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2층TEL. 02-2011-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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