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멘토, 울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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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1-11-17 03:34 조회9,98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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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멘토, 울형님!
보경 - 2011년 가을 동학지에서 옮겨 싣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본받고 싶은 분은요?”
어릴 때부터 선생님이나 어른들로부터 종종 받아온 질문입니다. 여기저기서 큰 목소리로‘신사임당, 헬렌켈러, 이순신 장군, 세종대왕…’등등 훌륭한 인물들이 줄줄 나옵니다. 조금씩 철이 들면서 부모님이나 선생님 등 주변의 인물들로 좁혀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는 딱히 누군가를 자신 있게 대답한 적이 없습니다.
책 속의 위인들은 살았던 시대적 배경도 너무 다르고, 어릴 때부터 한결같이 뛰어난 모습만 묘사되어 있어 딴 세상사람 같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조금은 나와 비슷한 현실을 극복하신 분들이 가슴에 자리잡기도 했지만 어른이 되니 이젠 이런 질문을 하는 이도 없습니다.
누군가에게 기댈 줄을 몰라 출가하기 전엔 매사를 갈등 속에서 혼자서만 해결하려 들었고, 그렇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고 착각했었습니다. 뭐든지 혼자 판단하고 혼자 하는 게 당연한 것이라고 여기며‘함께 나눔’의 소중한 의미를 가슴으로 닫고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그 때 그 물음의 답을, 내 마음의 멘토*를 이제야 찾았습니다.
‘울·형·님!’
이렇게 나지막하게 혼자 읊조리는 것만으로도 슬며시 기분 좋아지는 사람, 마음이 지치거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할 때 내게 힘을 주는 참 고마운 사람은 다름아닌 바로 제 사형입니다.
종교와 출가에 관심도 없던 내가 무언가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욕구 하나만으로 머리를 깎게 되었고, 삭발하고 며칠이 지나서야 지금의 형님을 만났습니다. 나와는 너무 다른 첫인상, 아담하고 예쁘장하면서도 당찬 모습의 형님.
‘으헉! 깐깐하고 무섭겠다. 으휴~!’
"행자님이 큰스님이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한다면 내가 열심히 도울 것입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이야기 하세요.”
그 날 이후 형님은 나의 교수 아사리가 되어 경전공부에서부터 승으로서의 행동거지 하나하나까지 나를 꼼꼼하게 챙겼습니다.
모든 면에서 성질 급하고 허술하고 덜렁거려 건달바라 불렸던 나를 형님은 마치 전생부터 잘 알고 있었던 것처럼 꾸지람 한번 큰 소리 한번 내지 않고 천천히, 차츰차츰 이끌어 주었습니다.‘ 초발심자경문’을 내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난자難字는 물론이고 새김과 행상까지 얼마나 열심히 가르쳐 주었는지 행자교육원에서‘초발심자경문’을 막힘없이 줄줄 읽어 울형님 덕에 잘난 척 좀 했습니다.
다른 행자님들의 놀라고 부러워하는 눈빛을 은근히 즐겨가며…….
사실 형님얘기를 하자면 끝도 없습니다. 기도도 그야말로 지극정성입니다. 온 마음과 온 몸으로 정성을 다하는 형님의 모습은 은사 스님을 비롯한 신도님들 모두가 인정하는 부분입니다. 말과 행이 언제나 일치하고 집안에선 책을, 밖에서는 흙과 식물들을 항상 살피며 성질 급하고 말 많은 제 이야기를 중간에 끊거나 면박주지 않으면서 끝까지 다 들어줍니다. 신도들을 대할 때도 동등하게 치우치지 않고 자는 것에서 먹는 것, 옷 입는 것까지, 은사스님께서는 율사가 따로 없다고 흐뭇해하십니다. 그러나 제겐 신세대‘지범계차持犯戒遮’달인의 경쾌하고 귀여운 율사입니다. 겉모습을 보면 제가 장닭 같고 형님은 병아리 같은데, 형님만 절에 오면 병아리가 어미닭 따라 다니듯 졸졸 따라 다니는 모습에 보살님들이 웃곤 합니다.
늦은 출가에 신심이라곤 없었던 제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차곡차곡 심어주며 마음으로 귀의하게 해주었고, 경전을 쉽고 재미있게 배울 수 있도록 초석을 튼튼하게 다져주었으며, 힘들 때마다 달래주고 웃게 해 주는 나의 소중한 멘토, 울형님!
부처님 도량에서 삭발염의하고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를 항상 느끼게 해주는 나의 소중한 형님이 있어 마음이 든든합니다. 조금이라도 퇴굴심退屈心을 보일때면 형님은 제게 일러줍니다.
‘단불위야但不爲也비불능야非不能也(다만 하지 않을 뿐, 하지 못하는 것은 없다).’
이제는 나의 좌우명이 된 이 글귀를 되새기며 가만히 읊조립니다.
‘나의 멘토, 울·형·님!’
저도 언젠가는 형님을 닮아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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