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덕사 터줏대감 영수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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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1-12-26 09:24 조회11,87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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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숭산 수덕사에는 동진출가 스님들이 많다. 조선말과 일제의 암울한 역사속에서 등장한 경허라는 걸출한 선사스님은 조선 5백년의 불교핍박으로 쇠퇴해가던 우리 불교를 선수행과 깨달음의 모습으로 탈바꿈시켰고, 경허스님의 전법제자 만공스님은 덕숭총림 선원인 정혜사에 머물며 지금의 선방수행의 틀을 확립하여 수덕사를 근대한국 선불교의 중심으로 만들었다.
경허, 만공 스님 두 분 선사께서도 어릴 때 출가해 계를 받은 동진출가승이고, 그 영향인지 만공스님을 직접 시봉했던 지금의 방장스님과 그 아래로 수좌스님 등 현재까지 수덕사에는 10대 동진출가의 맥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친아들인 라훌라 스님으로부터 시작된 동진출가는 역사속에서 수많은 선지식과 큰스님들을 탄생시키며 전승되어온 불교만의 독특한 전통이다.
수덕사의 많은 동진스님들 중에 빼놓을 수 없는 스님이 지운스님이다. 지운스님은 법명보다 ‘영수스님’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어릴 때 부르던 이름이 익어져 법명을 부르면 오히려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형편이다.
출가를 위하여 수덕사에 도착하여 입산의 허락을 받으려고 사무실에 갔을 때 영수스님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인생의 대전환의 계기가 되고 심각한 고민 끝에 출가를 단행한 입장에서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출가의 뜻을 밝히려는데 미처 말도 꺼내기 전에 “아~ 입산하려고. 그래, 행자실로 가도록 하지.” 짧은 말로 수덕사 입산의 절차를 마쳐버렸다.
담백하고 직선적인 성격의 영수스님은 흔히 ‘수덕사 터줏대감’으로 통한다. 20대 청년시절에는 절에 와서 시비를 걸고 행패를 부리던 무례한 사람들을 용납하지 않아서 지금도 인근 사람들에게는 ‘수덕사 지킴이’로 기억될 정도로 괄괄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터줏대감으로 불리는 이유는 계를 받은 이후 수덕사를 떠나본 적이 없는 것도 있지만 어려서부터 노스님들 시봉을 시작으로 지금의 수덕사 대 소사 모든 곳에 영수스님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일이 없는 까닭이다.
그래서 40년 세월을 말사 주지 한번 나가지 않고 오로지 수덕사에만 살아온 스님은 수덕사의 스님들과 덕숭산 구석구석에 관계된 작은 일이라도 모르는 일이 없다. 영수스님은 어려서 노스님들 앞에서 무릎꿇고 배운 의식과 염불이 아주 빼어난 수준이지만 밖으로 드러내는 법이 거의 없다. 하지만 간혹 후배들의 예법이나 염불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지나치는 결에 잠시 한마디씩 일러줄 뿐 자리를 만들어 청하려 하면 결코 응하지 않는다.
당신의 살아오며 배운 방법이 그런 틀을 갖추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렇게 자리를 갖추는 것 자체가 상에 얽매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 출가한 사람들이 지나치게 격식을 차리고 모양내는 것을 경계하여 가끔 면박을 주기도 하지만 그 말에 미움을 담는 일은 없다.
영수스님은 수덕사를 떠난 적이 없는 까닭에 강원이나 대학공부를 한 경험이 없지만, 당신의 후배나 상좌들에게는 시대에 따른 공부와 활동을 부족함 없이 지원한다. 대학을 마치고 유학을 떠난 상좌에게 꾸준히 학비를 보내고, 군에서 법사로 있는 시봉에게도 격려와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세상에 나가면 그만큼 유혹과 번잡함이 많아 ‘중노릇’하기 어렵다는 노스님들의 가르침에 수덕사 산문 밖을 떠나보지 않은 자신의 삶에 회의나 아쉬움이 있어서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변화와 요구 속에서의 ‘중노릇’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정확히 아는 까닭에서 이다.
큰 절에는 대중이 많이 사는 까닭에 일년에 몇 차례씩 다비식이 있게 된다. 다비는 스님들의 마지막을 정리하는 아주 중요한 일중 하나다. 수덕사는 특히 ‘여승’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진 견성암 선원이 우리나라 최대의 비구니 도량이라 비구니스님의 다비식이 자주 있곤 한다. 그래서 늘 다비장을 깨끗이 가꾸고 다비에 필요한 화목을 준비해 놓는데, 다비장의 모든 준비와 진행은 언제부터인가 영수스님의 몫으로 굳어졌다.
절과 마을의 일꾼들이 다비식을 준비하고 돕지만 스님들의 가는 길은 스님들이 맡아서 준비하고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에서이다. 누구도 선뜻 나서서 하려 하지 않는 힘든 일을 직접 팔을 걷어붙여 나무를 쌓고 청솔가지를 덮어 스님들의 마지막을 준비한다. 수십년 세월동안 보고 익히며 쌓아온 경험은 능숙하고 자연스럽게 다비식을 이끌어 가고, 절도 있고 숙련된 진행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각 본사마다 각각의 전통에 따른 다비식이 있지만 수덕사의 다비식이 그중 간결하고 깔끔하며 시간적으로도 가장 신속하다는 평을 듣는 이유는 덕숭산의 가풍이 담박한 이유도 있지만 영수스님이 늘 다비장을 지키는 까닭이다. 그래서 덕숭산 노스님들에게 영수스님은 다비를 맡아줄 든든한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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