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떠나며, 집을 찾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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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1-07-01 06:05 조회7,02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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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떠나며, 집을 찾으며
청암사 승가대학 21회 동문 자은
올해 봄, 12년 동안의 한국 생활을 뒤로 하고 캐나다로 돌아왔다. 지금은 인구 백만이 넘는 도시가 된 내 고향 캘거리 근처의 작은 마을에서 몇 개월을 보낼 생각이다. 이곳에 있는 불교 센터 몇 곳을 방문하였고, 또 몇몇 친절한 베트남 스님들도 만났고, 비파사나에서 티베트 불교에 이르기까지 각자 다른 전통을 따르고 있는 재가 불자들도 만나보았다. 그러나 아직 한 번도 한국인 스님은 만난 적이 없다.
최근 로키 산맥에 여행 갔을 때, 한국인 이민자가 운영하는 모텔에 들른 적이 있다. 데스크 뒤에 앉은 여자 분이 나를 보더니 반가워서 거의 춤을 추다시피 하셨다. 한국 스님을 만난 것이 너무나 오랜만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나를 껴안아도 되는지 물어보기까지 했다. 그녀는 캘거리에 한인 이민자들이 매우 많고, 이 지역 한인들의 삶과 관련된 온 갖가지의 정보가 실리는 한국어 신문(알버타 저널)도 있다고 했다. 그녀는 신문 한 페이지를 내게 건네 주었는데, 거기에는 캘거리에 있는 모든 한국 종교 기관들이 실려 있었다.
그러나 나는그정보를 보고매우마음이아팠다. 거기에는24개의기독교교회가실려있는것이었다. 24개! 그리고 단 하나의 한국 절이 있었다. 딱 하나! 나는 신문에 나와 있는 두 개의 번호 중 첫 번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캘거리 서래사). 젊은 남자가 커피숍 이름을 말하며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잘못 건 줄 알고 그에게 전화번호를 확인했더니 맞는 번호라고 했다“. 아, 저는 불교 사원 서래사를 찾는데요.”그는 말했다“. 여기서 일하는 사람이 그 절을 알아요. 그런데 그녀가 오늘 안 나왔네요.”
그래서 두 번째 번호에 전화를 했다. 어떤 여자가 전화를 받아서 나는 서래사냐고 물었다.“ 아닙니다. 그렇지만 몇몇 신도분들이 여기서 일주일에 몇 번 만납니다.”나는 어떻게 주지스님과 연락할 수 있는지 물었으나 그녀는 모른다고 했다. 그는 거기 살지 않고 큰 행사가 있을 때만 오신다는 것이다.
처음 청암사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 나는 스님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주기로 했다. 그래서 영어동아리가 시작되었다. 나는누가관심이있는지, 또스님들이영어를얼마나알고있는지몰랐기때문에설문조사를했다. 선배스님들 중 한 분이 영어를 매우 잘 하셨다. 그것을 알고 기뻐했으나 그녀가 쓴 내용을 보고는 실망했다.“ 영어를 좋아했었지만, 한국인 스님으로서 영어가 필요가 없으니 더 이상 관심이 없다.”나는이 일이 결코 잊혀지 지않는다.
최근 조계종단에서는 어떻게 하면 서구사회에 한국 불교를 알릴 수 있을지에 대해 많은 논의가 오가고 있다. 내가 보기에는 한 가지 길밖에 없다. 스님들이 단지 떠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아는 대부분의 스님들이 별로 한국을 떠나 외국에서 살고 싶어하지 않는다. 나 역시 타국인 한국에서 12년을 살아보니 그것은 정말 어려운 일임을 안다.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것도 어렵고 절망스러운 일이지만, 문화와 음식, 모든 것이 다르다.
그러나 자신이 태어나고 양육된 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몇 년을 보내 보면 재미있는 일이 일어난다. 하루는 의문이 일어났다.“ 집이란 무엇인가?”일반적인 의미에서‘집’이란 단어는 우리가 태어난 곳, 우리 소유인 장소, 우리가 속해 있는 장소, 세상 나머지로부터 안전한 귀의처(refuge)를 의미한다. 스님이 되는 것을‘출가’라고 한다. 스님에게 집이란 무엇인가? 한국에 있으면서, 특히 강원 생활을 하는 동안 나는 자주 외로움을 느끼고‘집에 가고 싶은’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집이란 뭐지? 내가 정말 가고 싶어하는 그곳이 어디지?”.
금강경에서 보살은 아상, 인생, 중생상, 수자상을 가지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가 진정한 보살이 되고자 한다면, 어떻게‘캐나다인이다, 한국인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 수 있겠는가? 어떻게‘서양인이다, 동양인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겠는가?‘ 귀의처歸依處’라고 하는 집이란 과연 어디인가?
불교인으로서 우리는 진정한 귀의처란 오직 불, 법, 승 삼보라는 것을 안다. 언젠가 나는 내가 어디로 가든지 내가 항상 이 귀의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따라서 어디를 가든, 나는 집에 있는 것이다. 캐나다에 있든, 한국 에있든, 러시아에 있든, 티베트 뉴질랜드 중국에 있든, 나는 항상 집에있다. 얼마나기쁜일인가! 어디를가든, 나는 이미 집에 있다! 나는 캐나다인일 필요도, 한국인일 필요도 없다. 나는 여기 있을 필요도, 저기 있을 필요도 없다.
나는 단지 부처님의 제자일 뿐이다. 그리고 내가 어디를 가든 사람들이 이 진정한 귀의처의 기쁨을 알도록 도와줄 수 있기를 바란다.
요즘 내가 살고 있는 마을에는 절이 없다. 그러나 어느 낡은 집 지하에 임시 법당이 있다. 그곳에서 나는 한 무리의 신도님들을 만난다. 우리는 참선을 하고 부처님 법을 함께 공부한다. 지난 주 우리는 금강경을 함께 배우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이 내가 승복을 입은 모습을 보고 종종 나의 집이 어딘지 묻는다. 이 질문은 항상 나를 웃음짓게 만든다.
청암사 승가대학 21회 동문 자은
올해 봄, 12년 동안의 한국 생활을 뒤로 하고 캐나다로 돌아왔다. 지금은 인구 백만이 넘는 도시가 된 내 고향 캘거리 근처의 작은 마을에서 몇 개월을 보낼 생각이다. 이곳에 있는 불교 센터 몇 곳을 방문하였고, 또 몇몇 친절한 베트남 스님들도 만났고, 비파사나에서 티베트 불교에 이르기까지 각자 다른 전통을 따르고 있는 재가 불자들도 만나보았다. 그러나 아직 한 번도 한국인 스님은 만난 적이 없다.
최근 로키 산맥에 여행 갔을 때, 한국인 이민자가 운영하는 모텔에 들른 적이 있다. 데스크 뒤에 앉은 여자 분이 나를 보더니 반가워서 거의 춤을 추다시피 하셨다. 한국 스님을 만난 것이 너무나 오랜만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나를 껴안아도 되는지 물어보기까지 했다. 그녀는 캘거리에 한인 이민자들이 매우 많고, 이 지역 한인들의 삶과 관련된 온 갖가지의 정보가 실리는 한국어 신문(알버타 저널)도 있다고 했다. 그녀는 신문 한 페이지를 내게 건네 주었는데, 거기에는 캘거리에 있는 모든 한국 종교 기관들이 실려 있었다.
그러나 나는그정보를 보고매우마음이아팠다. 거기에는24개의기독교교회가실려있는것이었다. 24개! 그리고 단 하나의 한국 절이 있었다. 딱 하나! 나는 신문에 나와 있는 두 개의 번호 중 첫 번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캘거리 서래사). 젊은 남자가 커피숍 이름을 말하며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잘못 건 줄 알고 그에게 전화번호를 확인했더니 맞는 번호라고 했다“. 아, 저는 불교 사원 서래사를 찾는데요.”그는 말했다“. 여기서 일하는 사람이 그 절을 알아요. 그런데 그녀가 오늘 안 나왔네요.”
그래서 두 번째 번호에 전화를 했다. 어떤 여자가 전화를 받아서 나는 서래사냐고 물었다.“ 아닙니다. 그렇지만 몇몇 신도분들이 여기서 일주일에 몇 번 만납니다.”나는 어떻게 주지스님과 연락할 수 있는지 물었으나 그녀는 모른다고 했다. 그는 거기 살지 않고 큰 행사가 있을 때만 오신다는 것이다.
처음 청암사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 나는 스님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주기로 했다. 그래서 영어동아리가 시작되었다. 나는누가관심이있는지, 또스님들이영어를얼마나알고있는지몰랐기때문에설문조사를했다. 선배스님들 중 한 분이 영어를 매우 잘 하셨다. 그것을 알고 기뻐했으나 그녀가 쓴 내용을 보고는 실망했다.“ 영어를 좋아했었지만, 한국인 스님으로서 영어가 필요가 없으니 더 이상 관심이 없다.”나는이 일이 결코 잊혀지 지않는다.
최근 조계종단에서는 어떻게 하면 서구사회에 한국 불교를 알릴 수 있을지에 대해 많은 논의가 오가고 있다. 내가 보기에는 한 가지 길밖에 없다. 스님들이 단지 떠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아는 대부분의 스님들이 별로 한국을 떠나 외국에서 살고 싶어하지 않는다. 나 역시 타국인 한국에서 12년을 살아보니 그것은 정말 어려운 일임을 안다.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것도 어렵고 절망스러운 일이지만, 문화와 음식, 모든 것이 다르다.
그러나 자신이 태어나고 양육된 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몇 년을 보내 보면 재미있는 일이 일어난다. 하루는 의문이 일어났다.“ 집이란 무엇인가?”일반적인 의미에서‘집’이란 단어는 우리가 태어난 곳, 우리 소유인 장소, 우리가 속해 있는 장소, 세상 나머지로부터 안전한 귀의처(refuge)를 의미한다. 스님이 되는 것을‘출가’라고 한다. 스님에게 집이란 무엇인가? 한국에 있으면서, 특히 강원 생활을 하는 동안 나는 자주 외로움을 느끼고‘집에 가고 싶은’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집이란 뭐지? 내가 정말 가고 싶어하는 그곳이 어디지?”.
금강경에서 보살은 아상, 인생, 중생상, 수자상을 가지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가 진정한 보살이 되고자 한다면, 어떻게‘캐나다인이다, 한국인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 수 있겠는가? 어떻게‘서양인이다, 동양인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겠는가?‘ 귀의처歸依處’라고 하는 집이란 과연 어디인가?
불교인으로서 우리는 진정한 귀의처란 오직 불, 법, 승 삼보라는 것을 안다. 언젠가 나는 내가 어디로 가든지 내가 항상 이 귀의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따라서 어디를 가든, 나는 집에 있는 것이다. 캐나다에 있든, 한국 에있든, 러시아에 있든, 티베트 뉴질랜드 중국에 있든, 나는 항상 집에있다. 얼마나기쁜일인가! 어디를가든, 나는 이미 집에 있다! 나는 캐나다인일 필요도, 한국인일 필요도 없다. 나는 여기 있을 필요도, 저기 있을 필요도 없다.
나는 단지 부처님의 제자일 뿐이다. 그리고 내가 어디를 가든 사람들이 이 진정한 귀의처의 기쁨을 알도록 도와줄 수 있기를 바란다.
요즘 내가 살고 있는 마을에는 절이 없다. 그러나 어느 낡은 집 지하에 임시 법당이 있다. 그곳에서 나는 한 무리의 신도님들을 만난다. 우리는 참선을 하고 부처님 법을 함께 공부한다. 지난 주 우리는 금강경을 함께 배우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이 내가 승복을 입은 모습을 보고 종종 나의 집이 어딘지 묻는다. 이 질문은 항상 나를 웃음짓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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