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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1-09-02 10:35 조회8,13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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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어느 도시에서 짜장면 한 그릇 사먹고 나니 스님의 호주머니는 텅텅 비게 되었다. 만행길에는 돈 떨어진 일이 한두 번이 아닌 터라 낭패일 것도 없었다. 마땅히 머물 곳도 없는 운수객(雲水客) 신세. 그러므로 아무 곳이나 가부좌 틀고 앉으면 내 집이고 선방이다.

도심 속의 공원은 수행자에게는 좋은 적정처(寂靜處). 스님은 공원에서 청량골을 세우고 몇 시간을 꼼짝않고 앉아 있었다. 이를 지켜본 노인네들이 진짜 스님이라며 싸들고 왔던 도시락을 풀어 놓았다. 아이들도 스님과 같이 놀았다.

하룻밤을 공원에서 지샌 다음날에는 도인스님이라고 소문이 났다. 끼니 걱정은 할 게 없었다. 아이들은 과자를 사왔고 어떤 노인들은 쌈지돈을 내놓으며 맛있는 음식을 먹으라고 대접하였으니 말이다.

참선수행으로 이틀을 지내고 있을 때 웬 낯선 청년이 스님을 찾아왔다. 자신을 대학생 불교연합회 임원이라고 소개한 뒤 친구로부터 집 없는 스님이 한 분 계시다는 소문을 듣고 온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리고는 자기 집으로 스님을 모시고 싶다고 밝히는 것이었다. 간청하는 청년을 따라 일어나면서 스님은 나직이 염불하듯 읊조렸다.

"곳곳에 제불보살이 숨어 있었구나."





목욕탕 등밀이로 몇 달을 살았던 이야기도 재미있다. 스님이 목욕을 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때밀이 종업원을 찾고 있었다. 종업원이 어딜 갔는지 나타나질 않자 스님이 슬그머니 일어나 등을 밀어 주었다. 오늘 처음 일을 시작해서 손놀림이 서툴다는 농담까지 섞어가면서.

그 일이 인연이 되어서 육체의 때를 씻어 주는 등밀이 수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언제나 머리를 반질반질하게 깎고 일을 했기 때문에 손님들은 스님은 '도사 때밀이'로 불렀다.

하루는 구두 닦는 아이가 자리를 비운 사이 손님의 구두를 손질하게 되었다. 흰 구두에 검은 구두약을 칠하여 새 신발을 그만 못쓰게 만들었다. 손님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용서를 빌었다.

"참으로 죄송합니다. 오늘이 시험 면접하는 날이라서 새 신발을 사셨다고 했는데 대신 제가 손님의 합격을 위해 종일 기도하겠습니다."

그후 신발 주인은 합격하였다며 밝은 모습으로 나타났고 기도 덕분이라며 스님에게 합장까지 하였단다.





"축생 시봉하기 힘들었습니다."

스님이 돼지 축사에서 몇 개월 일하고 난 뒤 했던 말이다. 오래 전부터 스님은 축생을 제도하겠다는 원력을 세우고 농장에서 허드렛일을 하고 있었다. 돈사에서 똥 치우는 일을 하면서 새끼 돼지를 손수 받아낼 때가 많이 힘들었다고 말하는 스님의 얼굴은 산파의 미소와 똑같았다.





시장통을 돌며 탁발하던 때의 일화도 우리를 배꼽 쥐게 한다.

스님이 몇 군데 가게를 돌고 옷가게에서 탁발을 하게 되었다. 늘 하던 식으로 반야심경을 목탁에 맞추어 크게 외우는데 주인의 반응이 없었다. 대부분 마음이 있는 이들은 목탁 소리가 들리자마자 시주를 한다. 그런데 옷가게 주인은 반야심경이 끝나고 또 염불을 욀 때까지 모르는 척하고 있었다.

스님은 은근히 오기가 생겨 즉흥적으로 만들어 낸 염불을 또박또박 외웠다.

"안 나오면 가나 사바하."

그런데 더 재미있는 일은 얼마 뒤 그 가게를 다시 들렀는데 스님이 이 염불을 외우자 주인은 이렇게 말하더란다.

"그런다고 주나 사바하."




스님은 선방에서 정진 잘하는 일등수좌이고 만행할 때에는 걸림없는 도인처럼 유유자적하였다. 승속에 관계없이 잘 통하는 셈이다.

조주 스님이 어떤 암자를 방문했을 때 생반(生飯; 재나 공양 때 귀신이나 짐승을 위해 조금씩 떼어낸 음식)을 얻어 왔다. 조주 스님이 그절 스님에게 물었다.

"까마귀는 사람만 보면 무엇 때문에 날아가 버릴까?"

"...."

그절의 스님이 합장하고 되물었을 때 조주 스님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나에게 살생하려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남을 의심하면 그 사람도 나를 의심하는 이치와 똑같다. 옛사람이 독사나 호랑이와 짝을 하고 놀았던 것은 이러한 이치를 잘 통달했기 때문일 게다.

한번씩 나는 도반스님을 만날 때마다 조주 스님의 일화가 생각난다. 수처작주(隨處作主)를 잘 해내는 스님의 행동을 보면 정말로 외물(外物)을 잊어버리면 외물도 나를 잊게 되는 경지에 이른 것 같다.





지금은 해남의 어느 암자에서 업장소멸을 위해 천일기도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몇 년 동안 역경(逆境) 공부를 했던 도반의 수행담은 현실에 적당히 안주하며 살아가는 내게는 훌륭한 법문이나 다름없다.



월간 불광 260호 실린 청주 관음사 현진스님의 '도반 이야기'를 옮겨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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