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법사 다녀온 선일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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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1-06-17 09:58 조회7,79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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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법사 다녀온 선일 스님
“스님들도 군대에 가나요?” 속가사람들이 많이 하는 질문 중에 하나이다. 세속을 떠난 스님들은 군대에 가지 않는다고 생각들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대답은 “네, 갑니다.”이다. 스님들도 군대에 간다. 병역의 의무는 출가자라고 해서 비켜가지 않는다. 그리고 스님들의 출가는 세속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구도(求道)라는 특별한 길에의 선택이며, 수행(修行)이라는 끝없는 행로의 도전인 것이다.
강원에서 함께 공부한 스님들은 서로의 속가 이름을 훤히 안다. 그 이유는 보통 강원에서 공부할 때 예비군훈련을 함께 받기 때문이다. 예비군훈련통지서는 속명으로 통지가 되고, 이 통지서는 전체 대중이 모인 자리에서 일일이 불러서 나누어 주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강원 도반들은 서로 속명을 부르며 장난을 하고 놀리기도 한다. 스님들이 속명을 공유한다고 하는 것은 그만큼 격의가 없고 편한 사이라는 증명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변○○, 선일 스님’ 또는 ‘변 법사’ 장난기가 심했던 우리 도반들이 선일 스님을 놀리며 부르던 호칭이다. 우리는 자주 이렇게 속명을 앞세우고 법명을 뒤에 붙이거나 그냥 변 법사라고 부르곤 했다.
선일 스님은 출가 전에 대학에서 같이 불교학을 공부한 학번 동기이다. 학교를 마치고 각기 출가한 줄은 알고 있었지만 서로 왕래는 거의 없는 편이었다. 그런데 강원에서 사집을 배우던 여름 초입에 문득 군법사의 신분으로 나를 찾아왔다. 당시 군법사로 있던 동기들이 여럿 있었던 까닭에 선일 스님의 방문이 그리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전혀 생각지 못했던 의외의 방문이었다.
지금도 사정이 그리 달라지지 않았지만, 당시에 군법사들이 사찰을 방문하는 대부분의 이유는 군포교활동 지원을 부탁하는 것이었다. 특히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대규모 수계법회나 매주 법회 때 장병들에게 나누어줄 염주와 간식비의 충당이 법사들의 가장 큰 문제이기도 했다. 그래서 보통 법사들이 사찰에 오면 어른스님들을 뵙고 종무소에 들러 일을 보는 것이 보통이었다. 아주 절친한 도반이 아니면 선일 스님처럼 그렇게 강원의 학인에게까지는 찾아올 시간과 여유를 갖지 못했던 것이다.
전역을 얼마 남겨놓지 않았고, 다시 산사로 돌아와야 하기 때문에 사찰순례를 겸하여 도반들을 찾아보는 중이라 하였다. 속으로 “아, 그래서 내 차례까지 왔구나!”고 생각했다. 학교에 다닐 때나 출가해서나 그렇게 친한 사이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갑자기 와서는 잠시 사이에 내 가까운 강원 도반 몇 명을 쉽사리 사귀었다. 그리고 방학 때 자신이 근무하는 강원도로 다들 놀러오라고 다짐을 받고는 훌쩍 떠났다. 당시 우리 도반들에게 강원도는 무척 친숙하고 편한 지역이었다. 아마 산이 높고 계곡이 깊은데다가 맑고 강한 기운이 가득한 것이 초발심학인들의 의기와 상통하는 면이 많았던 것 같다. 안 그래도 자주 가고 싶은 곳인데, 정중한 초청에 잘 대접하겠다는 약속까지 받았으니 참새가 방앗간을 피해가랴. 그해 여름방학 때 우리는 선일 스님의 안내로 강원도에서 정말 흡족한 시간을 가졌었다.
그러나 바로 뒤에 그 과보가 따랐다. 선일 스님은 군에서 전역하면 강원에 입방하고 싶은데, 그곳이 바로 우리 강원이라는 것이었다. 순간 나는 마음속에 먹구름이 밀려드는 것을 느꼈다. 괜히 나 때문에 도반들이 불편해 할까봐 염려가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생각은 괜한 걱정이었다. 다들 군법사 출신 도반이 하나 생기는 것에 흔쾌히 찬성을 했기 때문이었다.
조금 늦게 강원에 입방했지만 선일 스님은 처신이 좋은 사람이었다. 스스로 낮추어야 할 때를 잘 알았으며 조심스럽고 자연스럽게 대중에 젖어들었다. 또 다른 면으로는 군법사로 근무하면서 군법당 주지로서의 경험과 경력이 있어서 다양한 방면에서 노련미를 보이기도 했다. 초심학인들에게 선일 스님의 신도단련 경험과 군포교 이력은 때로 아주 유용한 도움이 되곤 했었다.
강원을 마치고 몇 년 뒤 미국의 포교당에 간다고 했을 때 극구 말렸는데도 떠나더니, 아주 힘든 승려생활을 경험하고 왔단다. 그리고 다시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렇게 몇 년 안보이더니 어느 날 본사에서 소임을 산다고 소식이 왔다. 입이 짧아서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하면서 어떻게 오랜 외국생활을 견뎠는지….
선일 스님은 늘 두드러지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자리가 분명하고, 때로 먼 여행을 즐기곤 한다. 보통 스님들은 자신의 선과 색이 분명한데 선일 스님은 없는 듯 있다. 또 어찌보면 엄청 까다로운데 대중에도 잘 어울리는 넉넉함이 있다. 말없이 떠나고 돌아와서도 안부도 잘 전하지 않는 무심함은 딱 중노릇이 어울린다. 이제는 지난 세월이 있어 때로는 도반의 그늘이 그립다.
선일 스님! 잊지 않을 만큼은 연락하고 지냅시다. 늘 건강하고 청안하세요.
주경 스님/서산 부석사 주지
월간 불광 395호에서 옮겨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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