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물이 푹 절은 행자’였던 현성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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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1-06-24 11:01 조회8,98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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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사 행자시절 어느 날, 객스님이 한 분 오셨다. 예의가 바르고 말투도 무척 점잖은 젊은 스님이었다. 객실에서 하루를 머문 그 스님은 다음날 아침 공양을 마치고, 어른스님을 뵈올 수 있겠느냐고 청을 넣었다. 당시 보통 객스님들은 원주스님이나 재무스님을 찾아 여비를 받아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따로 어른스님을 찾는 경우는 드물었기 때문에 의아한 생각이 들었지만 주지스님을 뵐 수 있도록 했다.
주지스님을 뵙고 나온 그 스님은 객실에 가서 걸망을 가지고 성큼성큼 행자실로 건너오는 것이었다. 행자실에 들어와서는 “인사드리겠습니다.” 하며 행자들을 향해 먼저 큰 절을 하는 것이었다. 깜짝 놀란 행자들도 황망하게 맞절을 하였다. 잠시 자리를 정리해서 행자반장이 중심이 되어 몇 마디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사연인즉 스님은 타 종단에서 계를 받고 몇 년 지내면서 노스님을 모시고 경공부도 하였는데, 조계종에 재출가하러 왔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타 종단 스님이라 하여도 스님은 스님이고, 현성 스님은 그 언행이 워낙 점잖아서 행자들이 쉽게 대할 수 없었다. 그리고 당시 수덕사는 행자복이 따로 없어 행자들도 승복을 입었었다. 그래서 혹 오해가 있을까봐, 언제나 “행자입니다.”라고 먼저 인사했다. 하지만 현성 스님이 아무리 행자라고 해도 다들 곧이듣지를 않아 자주 오해가 따르곤 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자신이 입고 온 깨끗한 승복을 다른 행자들에게 주고, 자신은 가장 낡은 옷을 얻어 입곤 했다.
좋은 스님을 인연으로 공부를 하였던지, 현성 스님은 행자실에 색다른 바람을 일게 하였다. 유연하게 넘어가는 염불소리는 다른 행자들과 격이 달랐고, 초발심자경문을 배울 때는 강사스님과 엇비슷한 태도와 목소리로 인해 다들 킥킥거리는 웃음을 참느라 애를 먹기도 하였다. 속가 말로 ‘애늙은이’라고 하듯이, 제대로 ‘스님물이 푹 절은 행자’로 인해 산중의 행자들은 한동안 무척 즐겁게 지내게 되었다.
새벽 3시가 못되어 일어나서 밤 9시까지 잠시도 쉴 틈 없이 돌아가는 행자실은 그야말로 군대의 훈련소와 다름없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시간이 나면 구석에 앉아 잠시 등 붙이고 발 뻗어 쉬고 싶은 생각이 구름처럼 밀려오곤 했다. 하지만 현성 스님은 달랐다. 울력이 있으면 미리 준비도 다해놓고, 일이 끝나고 나면 뒷마무리도 혼자서 다할 때가 많았다. 일을 얼마나 잘하던지 군에서 배웠다는 칼질은 주방장 수준이고, 삽질이며 비질, 지게질에 밭일까지 못하는 일이 없었다. 잠시 안 보인다 싶으면 창고며 다락에 가서 짐들을 정리하고, 묵은 쓰레기며 잡동사니들을 꺼내서 청소를 하곤 했다.
공양주를 살 때는 다른 울력을 면해주는 까닭에 거의 종일토록 공양간을 떠나지 않았다. 매 끼니마다 공양 지을 쌀을 상에다 펼쳐놓고 낱낱이 돌이며 잡티를 골라냈고, 가마솥은 얼마나 닦았는지 윤이 반질반질하곤 했다. 오죽하면 반찬을 준비하는 채공보살들이 너무 깨끗하고 애를 써서 부담스러워 못 살겠다고 투정을 부리기도 했다.
한번은 스님이 냄비에 무엇을 끓이는데 가까이 가서보니 누룽지처럼 보였다. 그래서 한 숟가락 얻어먹자고 했더니, 안 된다고 자꾸 거절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상한 생각이 들어 사실을 알아보니, 설거지통에서 나온 음식 찌꺼기들이라는 것이었다. 쌀 한 톨이라도 헛되이 버리면 다 공양주의 잘못이라 생각하여 그걸 끓여먹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 기가 막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 바보 같은 행동에 화가 나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했다. 세제며 수세미가루며 온갖 잡스러운 찌꺼기로 범벅된 것을 먹을 생각이 도대체 어디서 나왔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결국 다시는 먹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마무리를 지었지만, 한동안 또 무슨 일을 벌일까 눈여겨 지켜보곤 했었다.
계를 받고는 매일 예불을 마치고 은사스님께 문안을 드리곤 했다. 몇 달을 변함없이 그렇게 매일 인사를 드렸는데, 어느 날부터 노스님이 은근히 역정을 내기도 하였다. 그래서 며칠씩 야단을 맞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자기를 공부시켜주시려고 그러는 거라며 오히려 더 신심을 내곤 하였다. 그렇게 한동안 스님을 시봉하더니 어느 날 문득 걸망을 지고 선방으로 떠났다.
계를 받고 몇 년을 더 수덕사에 살던 나는 해제를 하면 현성 스님을 기다리곤 했었다. 제방의 선원과 토굴에서 만난 선사들과 수좌스님들에 대한 이야기들, 그리고 여러 가지 수행법에 대한 정보들, 산세와 기운이 좋은 도량에 대한 스님의 이야기들은 정말 재미있고 힘이 되곤 했었다.
며칠 전 현성 스님이 수덕사 근처에 토굴을 구해서 온다는 말을 들었다. 건강이 안 좋아져서 얼마간 조리를 해야 할 것 같단다. 마음이 짠하고 아파왔다. 스님과 함께 걸망 메고 선방에 다녀야 하는데, 얼른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주경 스님/서산 부석사 주지
월간불광 391호에서 옮겨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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