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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보리암 능원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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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1-07-08 09:43 조회57,81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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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봄비가 내려 촉촉이 젖은 금산을 오른다.


나무들의 들숨과 날숨이 가득한 숲길엔 등산객들과 보리암으로 가는 신도들이 열을 이어 걸음을 옮긴다. 자박자박 찾아드는 걸음들이 가벼운 건 고운 비단 산이어서 이기도 할 것이고 보리암이 우리나라 3대 기도도량 중 하나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기도 전에 첫 걸음부터 몸이 한 꺼풀을 벗은 냥 가벼운 건 산을 오르기 위해 마음의 가방에서 무언가 하나쯤은 버려두고 왔기 때문이 아닐까.


산중의 암자라 하면 간간히 풍경소리가 들려오는 고즈넉한 마당을 떠올릴 테지만 보리암은 다르다. 수많은 사람들이 해수관음보살상 앞에서 두 손을 모으고 눈앞에 펼쳐지는 절경에 환호한다. 그 발 디딜 틈 없는 마당에서 능원스님이 불쑥 모습을 보이신다.


능원스님이 보리암의 주지 소임을 맡은 지는 반년. 이토록 좋은 풍경을 바라보며 사시니 좋겠다 하니 스님은 아직 반년의 풍경은 못 봤다며 지나간 날들보다 앞으로의 날들에 몸을 기울이신다.


“생각만큼 바쁘진 않아요. 수행자로써 그리고 주지로써 할 일을 할 뿐이니. 나는 종무소 일은 잘 모릅니다. 종무원들이 해야 할 일이니 내가 알아야 할 일도 아니고요.”

산중 절이지만 도심 절보다 사람이 더 많이 오니 많이 바쁘실 것만 같았는데, 스님은 그 안에서 원칙에 따라 움직이니 전혀 분주해보이지 않는다.


“나는 일을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모든 문제 안에 답이 있으니 상식적으로 보면 돼요. 부처님도 열심히 정진해서 깨달음을 얻었잖아요. 기본, 기초, 상식만 잘 알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스님은 10년 넘게 선방을 다니다가 진주 보광사에서 주지 소임을 살고 다시 선방을 다니다가 현재 보리암 주지 자리에 앉았다.


“선방 수행자는 그저 수행만 하면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주지 소임을 살면서는 수행자로써 주지라는 옷이 맞는지 안 맞는지 생각을 해봐야 해요. 보리암 주지라는 옷이 내게 맞는지 안 맞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스님은 늘 초심을 잃지 않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산다. 보리암 주지라는 이름에 쓸려서 살면 수행자로써의 본분을 잃을 수 있기 때문에 늘 조심스럽다. 한번 물들면 쉽게 털고 나올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능원이라는 내 법명이 있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날 능원으로 보지 않고 보리암 주지로 보더군요.”

스님이 보리암에 오기 전과 후에 바뀐 건 아무 것도 없단다. 환경이 바뀌었을 뿐이지 생각이나 사상이 바뀐 게 없는데 사람들이 자리로 사람을 평가하더라는 말씀이다.


“공부가 깊어진 것도 아니고 도가 높아진 것도 아닌데 사람들이 다르게 대해요. 그게 나와는 안 맞는 거예요. 보리암 주지가 나한테 안 맞는 옷이라기보다 그렇게 보는 시선이 나한테 안 맞는 옷인 거지요.”

스님은 방을 한번 휘 둘러보시며 수행자에게 이렇게 큰 방이 뭐 필요하겠냐며 이것도 호사라 하신다.


선방 수좌로 살다가 소임을 사니 힘들지 않은가 여쭙는다.

“공찰 주지를 살면서 선방을 생각하는 건 도리가 아니지요. 주지 소임을 살 땐 이곳에 충실해야지요. 승복 입고 살면서 큰 어려움은 없습니다.”


스님은 지난 달 남해제일고등학교 다섯 명의 학생에게 금산보리암장학금을 전달했다. 그리고 사랑의 쌀 나눔 행사도 열어 100가마니의 쌀을 나누었고 남해대대와 자매결연을 맺었다. 지역사회와 유대관계를 돈독히 할 수 있는 이러한 활동은 단발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펼쳐나갈 것이라는 게 스님의 뜻이다.

“보리암에선 무엇을 해야겠다는 것보다 관리를 잘 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무엇보다도 기도처이니 기도하는 분들이 불편하지 않아야 하고, 지역민들과의 유대관계가 좋아야 하지요.”


스님의 포교를 위한 지원 활동은 스님이 군법사로 있으면서부터였다. 스님은 동국대학교를 졸업하고 선방을 두어 철 나고 군대에 갔다. 스님은 군법사로 있으며 주말에 네다섯 차례의 법회를 했을 정도로 활동적이었다. 전역 후에 스님은 다시 선방에 갔다. 그리고 전역 후에도 간부 불자들과 계속해서 인연을 맺어오며 위문 법회도 여러 차례 했다. 논산 훈련소 수계법회 때엔 지원도 여러 번 했다. 군 포교가 중요하다는 말은 많지만 현실적인 지원은 부족한 가운데, 능원 스님은 말만이 아닌 실천하는 스님이었다. 그것은 현재에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동대를 마치고 군법사를 한 스님이 선방에 가는 모습은 눈에 띄는 부분이다. 스님은 대학 4학년 때 논문을 일찍 마치고 의성 고운사에서 첫 철을 났다. 별시 얻은 건 없었으나 계속 선방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방에 갈 때는 모든 걸 버리고 가잖아요. 공부 외에 뭘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 수좌가 아니지요. 선방의 자리는 수행자에게 맞는 옷인 거예요. 인연에 따라 살다보니 선방에 가지는 못하지만 언제나 수행자라는 마음을 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은 가지고 살아요.”


스님은 요즘 시대에 교화와 수행을 따져 나누는 것은 어리석은 것 같단다. 스님이 그 자리에서 출가자의 모습에 충실하면 어디서든 누구든 찾아와 만날 수 있으니, 그 모습 자체만으로도 교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저는 한참 멀었지요. 내 말과 행동을 보고 감화 받을 사람이 몇이나 될 런지요.”


스님은 선방에서도 주지 소임을 살면서도 억지로 뭘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이 살았다. 그저 공부 할 때의 기준은 철저히 스님 자신인 ‘나’였다. 남들의 잣대를 갖다 댈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너무 느슨하지도 너무 짱짱하지도 않은 거문고 줄에서 제 소리가 나오는 법이니 말이다.


스님께 출가 얘기를 여쭙는다. 그러자 스님은 27년 전 출가할 때의 초심을 훼손시키는 것 같아 출가에 대한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단다. 스님의 말로 한번, 글로 옮겨 적으며 한번 더 윤색될 수 있으니 스님이 함구하시는 마음을 가늠하게 된다. 스님은 그 대신 불교를 처음 접하게 되었던 고등학교 시절 얘기를 풀어놓으신다.

“나는 불교를 헌책방에서 고른 책을 통해서 처음 접했어요. 고등학생 땐 새 책 산다고 용돈 받아서 헌 책을 사곤 하잖아요. 그 시절에 진주의 제일서적이라고 헌책방이 있었는데 그게 불교서점이었어요. 그때 본 책들이 불교사상, 선사상 같은 잡지들이었어요. 난 그때 교회를 다니고 있었고 그래서 그 책을 보기 전까지는 불교가 미신인 줄 알았어요. 근데 그 책을 접하게 된 게 인연인 거죠. 난 불교를 사람을 통해 접한 게 아니니 편견 없이 접한 거예요. 만일 그때 그 책을 안 봤다면 과연 출가를 했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죠.”


스님은 말씀을 나누는 내내 별 할 말 없는 사람이라 하신다. 큰 어려움도 큰 장애도 없이 살아왔고 공부도 다 되기 전까지는 흔적이 없는 것이니 무엇을 말할 수 있나 하신다.

“내가 출가해서 살아온 얘기를 적으라면 한 줄도 못 돼요. 선방을 다녔으나 결실이 없고 주지 소임은 나보다 잘하는 스님들이 많은데, 내게 살림살이를 내놓아봐라 했을 때 뭐가 있겠어요.”


남들이 볼 때는 보리암 주지 자리에 앉았다고 하지만 그런 것은 남들이 보는 세속적인 이력일 뿐 스님 스스로가 보는 수행자로써의 삶은 다른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출가해서 산 27년의 시간이 후회스럽지는 않단다. 특출나게 말할 것은 없어도 웬만큼은 하고 살아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주지 이력은 세속적인 것이지 수행자에게는 아무 것도 아니잖아요. 어디서 태어나 어느 학교를 나오고 어디 선방을 다니고 어디 주지를 산 것이 다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그것 자체가 망상이지요.”


스님은 앞으로도 특별하게 무엇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다. 그저 수행자의 모습을 갖춰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산다. 수행자의 초심으로 끝까지 갔으면 하는 것이 스님의 원력이다.

스님이 말씀을 하시다가 문득 고개를 드신다. 오후 햇살이 찾아와 보리암을 환히 비추고 있다. 비 갠 남해 금산이 정말 비단처럼 환해진다. 스님이 한 마디 하신다.


“내가 스님이 안 됐으면 이렇게 좋은 데에 어찌 살겠어요.”


- 월간해인 2011년도 6월호에서 정명스님의 글을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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